국제시장 줄거리
1950년 한국전쟁을 지나 부산으로 피란 온 ‘덕수’(황정민 분)의 다섯 식구,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던 ‘덕수’는 고모가 운영하는 부산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간다. 모두가 어려웠던 그때 그 시절,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난 ‘덕수’는 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 ‘영자’(김윤진 분)를 만난다. 그는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접고 다시 한번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건너가 기술 근로자로 일하게 되는데…
가족을 위해 굳세게 살아온 그때 그 시절,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
국제시장은 1950년 6.25 전쟁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다룬 현대사입니다.
국제시장에서 나오는 첫 장면은 흥남부두에서 시작합니다.
흥남부두에서 이런 일이 있었던것을 알려면 우선 6.25 전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1945 세계전쟁이 종전을 하며 대한민국도 광복이 되었습니다.
광복과 동시에 소련이 북한을 장악하는데 이유는 국내 치안유지와 일본군의 무장해제였습니다.
이에 미국도 남한을 장악하게 됩니다.
3년간 미소군정시대가 된것입니다.
1950년 6월 전부터 38선 근처에서 양측 간의 총격전이 있었는데 잠깐 북한의 평화의 제스처에 남한은 비상경계령을 풀게 됩니다. 비상경계령을 풀며 군의 1/3이 외박과 휴가를 나가 있는 사이 북한이 남침을 하게 됩니다.
북한은 남침을 하며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한 달 후 낙동강 라인까지 내려오는데 미국이 이때 남한에 UN군을 파견하게 됩니다. 그때 총사령관이 유명한 맥아더장군이었습니다.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간 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이고 대성공을 하게 됩니다.
1950년 9월에 UN군은 다시 서울을 수복하며 북한까지 밀고 올라가는데 이때 중국이 위기를 느끼며 인해전술을 펴서 다시 서울을 빼앗습니다. 이 사건이 1.4 후퇴입니다.
이때 미국의 10군단이 북한의 흥남부두에 고립되게 됩니다.
고립된 미군은 배를 이용해 탈출을 하게 되는데 흥남부두에 남아있던 피난민이 무려 1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현봉 미 10 군관장의 고문이었던 현봉학 박사가 눈물로 장군에게 사람들을 도와달라고 호소하게 됩니다.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군수물품을 다 버리고 14000명의 피난민을 구조하게 됩니다.
이것이 영화의 첫 장면입니다.
이후에도 1951년 3월부터 6월까지 계속 치열한 전투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때 휴전을 제안한 것이 소련이었습니다.
휴전을 제의하고도 2년 동안 전쟁은 지속되었는데 이유는 휴전선을 어디로 정할지 포로송환은 어떻게 해야 할지 양측이 협의를 하지 못해 전쟁 피해가 더욱 심각해지게 됩니다.
그 후 어른들이 겪었던 대한민국 현대사가 국제시장의 배경이 됩니다.
피난민들의 이야기
국제시장은 6.25 전쟁 중에 부산으로 피난한 피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잡은 곳입니다.
전쟁이 끝난 후 대한민국은 폐허였고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게 됩니다.
이때 받은 것이 밀가루, 설탕, 실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60년대부터는 스스로 경제를 꾸려나가야 했는데, 수출을 해서 경제를 일으키는 것을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물건을 만들어야 수출을 할 수 있는데 물건을 만들 돈이 없었습니다.
그때 기회가 왔는데 그 첫 번째가 파독. 독일과 경제협력이었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광부와 간호사가 독일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독일에서 간호사와 광부는 3D업종(Dirty 더러움, Dangerous 위험한, Difficult 어려운)이었는데 이때 독일은 복지정책이 확대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병원에 환자들이 넘치던 때였습니다.
파독으로 독일에 간 광부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과 위험으로 27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고 4명이 자살을 합니다.
간호사들은 매일 하는 일이 시체를 닦고 오물을 받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이분들이 보내는 돈이 우리나라를 살리게 됩니다.
1970년도에는 북한보다 우리나라가 더 잘살게 됩니다.
1980년대에는 6.25 33주년으로 남쪽에 있는 이산가족이라도 만나자라고 해서 이산가족 방송을 138일 동안 하게 됩니다.
10만여 명이 참여 1만여 가족이 재회를 하게 됩니다.
1985년에는 남북이산가족이 재회를 하게 되고
1990년도에는 IMF 외환위기가 왔지만 금 모으기 운동으로 3년 조기상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을 하게 됩니다.
6.25부터는 저희 조부모님의 삶과 저희 부모님의 삶이 있습니다.
40이 된 저의 기억 속에도 이산가족상봉방송 장면이 기억에 있고 IMF가 기억에 있습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어르신들은 존경받고 감사받을 자격이 있으십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드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천만관객의 영화가 되었는지 너무 이해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삶으로 몰입도가 높았고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희 부모님이 어떻게 삶을 희생하시며 우리를 키워내셨는지 알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